올해는 ‘붉은 말의 해’입니다. 힘차게 내닫는 말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주와 성취를 요구합니다. 학생은 성적을 위해, 직장인은 성과를 위해, 사업가는 이윤을 위해, 가장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쉼 없이 달립니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의 등을 떠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생의 서글픈 역설이 있습니다. 더 잘 살기 위해 밤낮없이 달리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사는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고도 마음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아무리 준마(駿馬)라도 쉬지 않고 달리면 결국 쓰러지듯,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대에 누워도 머릿속 생각은 멈추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자도 마음의 피로는 가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몸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작 자신의 영혼은 돌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영혼은 어디에서 참된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고 소유하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성공이나 즐거움도 영혼의 깊은 갈증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취미를 즐기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보려 합니다. 물론 육신의 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일상의 염려는 다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환경이 달라지는 데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세상의 성공이나 사람들의 인정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채우시고 우리 영혼에 참된 쉼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지친 우리를 사랑으로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은 실패와 낙심, 죄책감과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죄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주님을 멀리 떠나 계셨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떠나 방황할 때에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 주님은 두 팔 벌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십니다.

  혼자 모든 짐을 지고 고단한 달리기를 계속하지 마십시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수님께 마음을 열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참 많이 지쳤습니다. 제힘으로는 더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시고 참된 쉼을 주옵소서.” 예수님을 처음 찾는 분이라면 오늘 그분을 믿음으로 영접하십시오. 한동안 주님을 떠나 있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다시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고 삶의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면 거친 파도 속에서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됩니다. 참된 쉼은 문제가 없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에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 안에서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