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는 20세기 초 탈출 묘기의 대가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물속에서 나무 상자를 탈출하는 묘기도 보였고, 누구도 나올 수 없는 최고의 감옥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탈출해 보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10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 죽음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위대한 탈출의 명수였지만, 죽음에서만은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자리에서 탈출한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손과 발이 못에 찔려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이 옆구리에 창을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무거운 돌로 무덤을 가로막아 놓았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자신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은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이유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육신 사건, 그분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사건, 그리고 그분이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입니다. 이 세 사건은 인류 역사에 가장 엄청난 영향을 끼친 영원한 의미를 지닌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 사건을 믿고,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가 참된 것을 증명합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부활은 이 땅에서 우리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환난, 핍박,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폭력이나 흉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목숨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인들은 박해자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화염에 불타고, 맹수에게 잡혀 먹히면서도 기독교인들은 초연했습니다. 찬송과 감사로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에 박해자들이 오히려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죽음은 그리스도인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것은 부활의 새 아침을 내다보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박해자들을 용서했습니다. 바울은 임박한 죽음 앞에서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를 외치며 로마로 들어가 순교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지하 카타콤에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부활 신앙은 죽음을 초월하는 힘과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내용이지만, 실제적인 삶의 능력입니다. 참된 부활 신앙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삶에서 힘과 효력을 발휘하는 능력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답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당면한 어려움을 넉넉히 감당하십시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의 아이콘입니다. 부활절이 우리 영혼, 가정, 양심이 부활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단지 부활주일만이 아닌 1년 12달 365일이 부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권능과 능력이 역사하여 죽었던 것들이 살아나고, 무너졌던 것들이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