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고난 주간은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십자가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동물의 뼈, 쇳조각, 유리 조각 등이 박혀있는 가혹한 채찍질, 모욕과 수치심, 타는 목마름, 뼛속 깊이 파고드는 고통, 죽음의 공포 등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로마는 노예나 식민지 백성 가운데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들을 십자가형으로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십자가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모두가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증표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유대법 대신 로마법으로 처형하도록 빌라도를 압박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모세의 법대로 처리한다면, 거짓 선지자로 정죄하고 돌로 쳐서 죽는 투석형으로 집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당시 유대 사회에 만연한‘참 선지자는 패역한 백성에 의해 순교를 당한다.’라는 사상에 따라 예수님을 부패한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한 참 선지자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오히려 예수님을 더 추앙하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애썼습니다.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신명기 21:23에 있는 모세의 법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처형된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뜻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십자가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 이외에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길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대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짊어지신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할 만큼 크고 심각한 죄였습니다. 그 엄청난 죗값을 예수님이 온몸으로 친히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감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부재 상태를 경험하는 영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고통을 감내하게 하셨을까요?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한 것은 쇠못이 아닌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표지이며 증표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잘 나타내 줍니다. 이 한 주간 십자가의 사랑에 흠뻑 젖어 들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