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신앙생활을 권투 경기에 비유했습니다. 권투는 끊임없이 펀치를 주고받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펀치가 날아올지 모릅니다. 한 대도 안 맞고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잘 때리고, 잘 피하고,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실컷 잘 때리다가 강펀치 한 대를 맞고 쓰러지면 헛수고입니다. 그래서 권투 선수는 펀치력 강화 훈련뿐만 아니라, 잽싸게 피하는 스피드 훈련, 맞아도 버틸 수 있는 맷집 훈련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맷집 훈련을 위해 무거운 고무공으로 끊임없이 복근을 반복해서 내려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맷집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탄 마귀가 끊임없이 펀치를 날리기 때문입니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방심하다가 맞는 펀치는 훨씬 충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잘 때려야 합니다. 바울은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고전 9:26)라고 말했습니다. 허공을 치면 힘이 빠집니다. 정확하게 상대를 가격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예리하게 갈아놓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잘 피해야 합니다. 잔매에 장사 없습니다. 잽(Jab)도 계속 맞으면 마침내 쓰러집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피할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탄 마귀의 유혹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달아났던 것처럼 유혹의 자리를 속히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잘 버티기 위해 맷집을 기르십시오. 신앙의 맷집은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사수함에 있습니다. 아울러 환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 신앙생활 자체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면 꽃길을 걷기보다 가시밭길을 걷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우리 앞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형통을 주시기도 하지만, 고난도 함께 주십니다. 형통과 고난을 세트로 섞어서 주십니다. 신앙이 좋다고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고난이 다가와 우리를 괴롭힐지 모릅니다. 고난은 우리가 웃고 떠들고 있을 때, 우리 등 뒤로 다가와 펀치를 날립니다. 믿음은 사방에서 펀치가 날아올 때, 체념하지 않고 감내하는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고난을 운명이 아닌 믿음의 여정으로 받아들이며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맷집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펀치를 맞고 넘어져도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는 신앙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언 24:16) 의인은 7전 8기의 신앙인입니다. 강펀치를 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인 예수님 바라보고 다시 일어나십시오. 믿음에 용기와 배짱을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무라카이 하루키는 그의 책 ‘노르웨이의 숲’에서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라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맷집을 키워서 어떤 환난도 넉넉히 감당하고 마침내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