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사무엘상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소가 있었습니다. 소는 사역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비유합니다. 소가 법궤 이동을 위해 특별히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목회자, 순장, 제직, 교사 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심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소는 젖 나는 소였습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입니다. 그런데 송아지들을 강제로 떼어 놓아야만 했습니다. 새끼를 떼놓고 수레를 끌어야 하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역자들은 가족 문제가 늘 걸립니다. 때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모, 자녀와 강제로 헤어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그 길을 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내 가족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사역자의 길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한눈파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면 예수님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 사역자의 삶입니다. 소가 울며 갔습니다. 사역자의 길은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게 하십니다. 눈물샘이 촉촉이 젖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은 모든 눈물로 사역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종종 우셨습니다. 사역의 길에는 눈물 빼는 일이 많습니다. 사역자의 길은 눈물과 함께 걸어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소가 힘들게 수레를 끌고 왔는데,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번제물이 되어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끼를 떼어 놓고 법궤를 끌고 온종일 먼 길을 걸어온 소입니다. 휴식은커녕 번제물로 드려지니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들은 불쌍한 소가 아닙니다. 소는 결국 죽습니다. 어떤 소는 병들어 죽고, 어떤 소는 일하다가 죽고, 어떤 소는 사람에게 잡아먹혀 죽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진 이 소만큼 영광스러운 소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행적이 기록된 소는 벧세메스로 향하여 하나님의 궤를 끌고 갔다가 제물로 드려진 이 소들이 유일합니다.
우리 인생도 동일합니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숨길 수 없지만,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떻게 죽는가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여, 병들어 죽지 말게 하소서. 사고로 죽지 말게 하소서. 전쟁으로 죽지 말게 하소서. 이왕 죽을 바에는 순교의 복을 허락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이 녹슬어 못 쓰게 되지 말고, 닳아서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 소들처럼 제물로 온전히 드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온전히 드려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