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여호수아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서 발견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새벽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왜 여호수아는 새벽을 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나이 들어 아침잠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부담이 무척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백성들을 이끌고 갈 힘과 지혜, 능력을 구했을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홍해의 갈라짐, 만나의 내려옴, 여리고 성의 무너짐, 예수님의 부활 등은 다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베풀어지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모델이시며 모범이신 예수님이 새벽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무척 바쁘게 보내셨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고단한 섬김으로 힘을 다하셨습니다. 우리처럼 연약한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 역시 달콤한 잠의 소원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을 깨우는 삶을 사셨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예수님에게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곤한 육신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발걸음을 붙들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수면은 예수님의 눈꺼풀을 무겁게 했을 것입니다. 피로에 지친 몸은 끊임없이 휴식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새벽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새벽을 살므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새벽형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 모세, 다윗, 여호수아 등은 새벽을 살았습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신앙의 세계에서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값지고 귀한 것일수록 획득하는 과정은 매우 길고 어렵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을 맺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지루하고 힘든 선한 싸움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동시대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부지런히 공부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세대에 감화를 끼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 위대한 영적 리더가 적은 것은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자신을 정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정복한 사람만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한 달이 되어가는 즈음에 새벽을 깨우며 살기로 결심합시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하루는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새벽에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하루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은 하늘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음으로 영혼이 충만합니다. 삶에 활력이 넘치고 맡겨진 일에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충분히 역전될 수 있습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위대함을 목격할 새벽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새벽을 깨우므로 인생 역전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